사람과의 관계는 꼭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함께한 시간보다 어떠한 추억을 같이 겪었는가가 척도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추억으로 인해 상대와 서로 각인 되었는가. 이것이 사람간의 관계의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추억으로 각인되어 친밀해지면 좋겠으나 이게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더불어 한쪽에서만 관계를 원하는 경우의 기본적인 전략은 당연하게도 상대방에게 자신을 각인되게 자주 생각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단번에 상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은 본능에 의해 판단이 급하게 단정되어 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스스로가 갈망하던 어떤 가치에 대한 발견, 혹은 주어진 환경에 대한 불만족에 따라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끼는 상황이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이 것을 기초로 서로 추억을 만들어 나아 갈 수 있게 되는 개기다 되면 좋으나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경우는 없는 듯 하다.
단정에 의해 부풀려지진 기대감은 당연스레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온다.
매사를 우연과 확률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이 좋을리 없다. 운명적인 만남같은 것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일테니 말이다.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 진정한 운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연이 아닌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을 두고 관계의 담금질을 하며 관계를 갖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어떻게 상대방과 추억을 나누며 오랫동안 지낼 수 있을까?
그동안 맹목적인 가치부여를 통한 관념으로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그래야하는 이유들을 만들어왔다.
생각치 않아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집착이 주는 파멸 말이다.
관념으로 시작한 집착은 상대는 과대평가하고 이는 과도한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현실은 망상가들에게 늘 그렇듯 실망감만을 안겨줄 따름이다.
이런 관념이 아닌 진정한 감상으로 오랜 시간 누군가를 생각 할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어린아이를 대하듯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할까?
이것이 노력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오랜 시간의 삽질로 관념을 통한 집착이 잘못된 것인지는 깨달았으니 이제는 존재 그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도록 해봐야겠다.
이것은 능동적인 것이 아닌 다소 수동적인 행위로 모든 기준을 초월한 것이 될 것이다.
그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어린아이 대하듯 사랑해주는 것.
이것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인간의 관계에 대한 나의 최선의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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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zelan



